에듀테크와 대학 교육
테크놀로지는 우리의 일과 생활을 바꾸어나가고 있으며, 교육도 예외는 아니다. 인공지능, 로봇, 생명과학 등 이전보다 고도화된 기술이 주도하는 4차 산업혁명은 인간을 넘어선 초지능(Superintelligence), 모든 인간과 사물을 연결하는 초연결(Hyperconnectivity), 경험과 차원을 확대하는 초실감(Immersive Experience)을 가장 큰 특징으로 하고 있으며, 디지털을 기반으로 더 넓은 범위에 더 빠른 속도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교육(education)에 이와 같은 기술(technology)이 결합하여 새로운 패러다임의 교육을 창출해내는 것을 에듀테크(EduTech)라고 한다. 에듀테크는 기존 이러닝(e-learning), 유러닝(u-learning)에 비해 광범위하고 포괄적으로 교육을 바꾸어나가고 있다. 이러닝이 기존 오프라인 교육을 동영상을 통해 인터넷 환경으로 옮겨 놓은 것이라면, 에듀테크는 인공지능, 빅데이터, 가상현실, 사물인터넷, 3D 프린팅 등 기술 영역 전반을 활용한다. 또한 이러닝은 효과적인 학습을 위해 강사의 강의 능력에 의존한다면 에듀테크는 학습, 기억, 공유, 활용 등 학습 프로세스 전반에 포괄적으로 접근한다. 그에 따라 글로벌 교육시장에서 에듀테크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어 미국 시장조사 업체 글로벌인더스트리애널리스츠(GIA)에 따르면, 세계 에듀테크 시장 규모는 2017년 2200억달러(약 257조원)에서 2020년 4300억달러(약 502조원)로 두 배 가량 커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에듀테크로 인한 대학교육의 변화
에듀테크는 초∙중등교육, 평생교육, HRD 분야뿐만 아니라 대학의 모습마저 뒤바꾸고 있다. 이는 대학의 위기이자 기회일 수 있다. 그동안 대학은 토드 로즈(Todd Rose)가 『평균의 종말(The end of average)』에서 비판한 표준화된 교육 시스템, 즉 학생들에게 학년에 따라 학습하는 내용, 방법, 시기, 속도, 순서까지 정해놓은 커리큘럼을 강요해왔다. 에듀테크의 발달은 대학으로 하여금, “왜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 모여서 학습해야 하는가?”. “왜 학습동기도 학습수준도 다른 학생들이 동일한 내용을, 동일한 방법으로 학습해야 하는가?”, “왜 모든 학생들이 4년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가?” 등 대학교육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는 동시에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에듀테크로 인한 대학교육의 변화의 방향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첫째,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벗어나 언제 어디서나 접근 가능한 교육이다. 기존에 교육은 학습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모두 같은 시간에 같은 장소에서 모여서 학습을 해야 했다. 그러나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교육 콘텐츠를 제공하는 데 시공간적 제약이 사라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무크이다. ‘무크(MOOC, Massive Open Online Course)’는 무료로 세계 유수의 대학 강의를 온라인에서 학습할 수 있는 서비스로 MIT와 하버드대학교의 에덱스(EdX), 스탠퍼드대학교 중심의 코세라(Coursera), 구글에서 시작된 유다시티(Udacity), 유럽의 퓨처런(Futurelearn) 등이 대표적이다. 무크는 2012년부터 주목받기 시작하여 2018년 기준 900개 이상의 대학이 1만 1,400여 개의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으며, 등록한 학습자만 1억 100만 명에 이른다.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2014년에는 캠퍼스가 없는 대학인 미네르바 대학(Minerva School)이 개교하였다. 미네르바 대학의 학생들은 ‘ALF(Active Learning Forum)’이라는 온라인 강의 플랫폼을 통해 100% 온라인 강의를 듣고, 비디오 채팅 기반 온라인 가상 교실에서 교수 및 동료들과 토론을 하고, 심층학습을 한다. ALF는 수준별 맞춤학습, 능동적인 학습, 체계적인 피드백을 효과적으로 구현할 수 있게 한다.
둘째, AI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적응형 학습(Adaptive Learning) 및 개별화된 학습(Personalized Learning)이다. 학생들의 인지능력, 학습능력, 지식수준은 개인마다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학교는 모든 학생을 동일한 내용과 동일한 학습방식으로 가르치고 있다. 카네기 멜론 대학교(Carnegie Mellon University)는 수학과목의 성공적 이수율이 평균 33%에 불과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지능형 학습 지원 소프트웨어인 매시아(MATHia)를 개발했다. 매시아는 학생들이 수학문제를 푸는 과정 전체를 데이터화하고 분석하여 어느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는지, 어떤 개념에 대해 더 정확한 설명이 필요한지를 진단하고, 1:1 학습 과외, 실시간 피드백 등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개별 학습자의 학습 난이도를 설정하여 적합한 학습 단계를 안내한다. 애리조나 주립대학교(Arizona State University)는 학생들의 적성과 전공 간의 적합도를 높일 수 있도록 eAdvisor 프로그램을 통해 수강이력을 철저하게 관리한다. eAdvisor 프로그램은 학생들의 출석과 학습 진행 상황, 과제 제출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개별 학생별 맞춤 정보를 제공하고 있으며, 학습속도가 뒤떨어지는 경우 경고를 주고 다른 대안을 제시하기도 한다. 또한 입문 강좌의 경우 적응형 학습 플랫폼을 갖추어 학생 맞춤형 온라인 튜터링을 제공한다. 2011년에는 Kentwon 기업과 연계하여 운영한 “대학 기초 수학”을 통해 과목 이수 학생 비율은 64%에서 75%로 높아졌고, 중도에 포기하는 학생 비율은 16%에서 7%로 낮아지는 성과를 보였다.
셋째, 가상현실(VR, Virtual Reality)과 증강현실(AR, Augmented Reality) 등을 활용하여 학습몰입을 높이는 시도가 증가하고 있다. 학습하고 성장하려면 몰입은 반드시 전제가 되는 조건이다. ArcheMedx가 2016년 발표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몰입 정도를 4분위로 나누었을 때 최상위 몰입 그룹의 학업성취도는 평균의 224%로 나타났고, 3분위 그룹은 평균의 173%, 2분위 그룹은 평균보다 낮은 80%의 학업 성취도를 나타냈다고 한다. VR은 가상현실을 통해, AR은 현실세계를 기반으로 가상의 요소를 접목되어 학습의 몰입감을 높일 수 있다. 미국 카네기 멜론 대학교는 도시 건설 프로젝트에 가상현실을 적용하고 있고, 털리도 대학교(University of Toledo)는 해부학 실습에, 싱가포르 난양 폴리텍대학교(Nanyang Polytechnic University)는 가스터빈과 엔진 내부 실습에 가상현실 기술을 활용하고 있다. 또한 영국 뉴케슬 대학교(Newcastle University)는 증강현실 기술을 이용한 레이어 리얼리티 앱(Layer Reality App)을 개발하였는데, 이는 같은 장소에서 과거와 현재 즉, 서로 다른 시대의 실상을 가상현실 기술로 동시에 보여준다. 이 외에도 맨해튼 음대(Manhattan School of Music)는 ‘폴리콤 텔레프레스즌스(polycom telepresence)’라 불리는 영상 회의 시스템을 사용해 원격 음악 교육 프로그램을 신설하여 전 세계에서 음악가들을 양성하고 있다. 넷째, 디지털 플랫폼(Digital Platform)을 기반으로 한 초연결 교육(Hyper-connected Education)이다. 이제 정해진 시간에 교수와 학생이 만나서 소통하는 교육 방식이 전환되고 있다. 학생들은 언제 어디서나 실시간으로 학습 과제를 부여 받고, 학습결과에 대한 피드백을 받으며, 학습 의견을 개진하는 등 시공간의 물리적 제약이 사라지고 있다. 학생은 교수와 다른 학생뿐만 아니라 선배, 멘토, 전문가 등을 포함한 네트워크의 일원으로서 타인과 활발한 상호작용 및 지식 공유를 통해 기존에 체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성장의 기회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초연결 교육의 사례는 대학보다 산업계에서 먼저 나오고 있다. 선마이크로시스템즈의 사내 지식 공유 플랫폼인 ‘선 러닝 익스체인지(sun learning eXchange)는 구성원들이 자유롭게 동영상, 문서, 음성, 교육 정보를 직접 제작해서 올리고, 공유할 수 있도록 한 플랫폼이다. 모바일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연결을 시도하고 있는 기업으로는 ‘바로풀기’, ‘케미스터디’, ‘라이브모카’ 등이 있다. 에듀테크가 가져올 가장 큰 변화는 이로 인한 교육 경계의 파괴일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혁신을 통해 교육기관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프로그램 사이의 경계, 교육공급자와 소비자의 경계는 약화될 것이며, 누구나 원하는 콘텐츠에 바로 연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대학교육을 위한 제언
에듀테크에 대한 대학의 접근은 아직은 소극적이라 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에서 요구하는 인재 양성을 위한 학과를 신설하고 교육과정을 개편하고, AI, Big Data, 3D 프린팅 등을 도입하고 있지만, 에듀테크가 교육 분야에 던지는 근본적인 질문에 성찰하고 이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데에는 소극적이다. 기술 자체가 해답이 될 수는 없다. 이제 대학이 대학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재설정하고, 그에 따라 어떻게 기술을 활용할 것인지 결정해야 할 때이다. 대학이 에듀테크를 도입하고자 할 때, 대학과 대학 구성원은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사항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첫째, 에듀테크는 도구일 뿐이다. 이를 왜, 어떻게 활용한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은 대학의 교육목표가 무엇이고, 학생이 누구인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는 기술에 대한 신중한 접근과 엄밀한 선별과정이 필요하다. 둘째, 4차 산업혁명에 적합한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서는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만큼이나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가 중요하다. 전공∙교양 교육과정과 교수방법에 대한 체계적인 설계 하에 에듀테크가 효과적으로 결합될 수 있도록 학교 전체 차원에서의 기획이 필요하다. 셋째, 교육 현장에서 이를 구현해야 하는 교, 강사가 에듀테크에 대해 제대로 알고, 활용하는데 있어서 기술격차(skill gap)로 인한 어려움을 느끼지 않도록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넷째, 에듀테크가 단순히 하나의 기술이 아니라 교육문화를 바꾸어나가는데 기여할 수 있도록 학사제도를 유연화하고, 모니터링을 통해 지속적으로 개선해나갈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강낙원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고등교육연구소장
[동대신문 1609호]